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로실로프 전차 (문단 편집) == 한계 == 그러나 독일군이 대(對) KV 전술을 익히기 시작하고, 1942년 여름 완벽한 실패로 끝난 하르코프 대공세에서 입었던 막대한 손실로 인해 소련 정부로부터 실패한 전차로 인식받게 된다. 기술적 실패가 잦았던데다 25~28톤 정도의 [[T-34-76|T-34/76]]에 비해서 48톤이나 나가는 중량에도 불구하고 1940년도에 양산된 KV-1E은 39구경장 76.2mm F-32 강선포, T-34/76 1940년형은 30.5구경장 76.2mm L-11 강선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T-34/76과 비교했을때 KV-1이 가진 장점이라고는 좀 더 긴 포신에 중장갑이라는 것 빼고는 없었다.[* T-34-76은 개량을 거듭하여 42구경장 F-34로 업그레이드되어 41.5구경장의 ZiS-5로 업그레이드되는 KV-1보다 더 장포신포를 장비하게 된다.] 물론 중장갑이라는 장점도 독일군이 PaK 40 등 좀 더 나은 대전차무기를 보유하게 된 때부터는 무용지물이 됐지만 말이다. 소련 국방 위원회에서는 KV 전차의 생산중단을 요구하였으나 전차생산 책임자와 논의하여 [[첼랴빈스크]], 일명 탱코그라드[* 전차의 도시란 뜻. 당시 독소전으로 인해 우랄로 피난갔던 전차 생산공장들이 첼랴빈스크에 집중되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. 정말로 영어로 구글에서 Tankograd로 검색하면 검색 결과 중에 영문 위키 페이지 첼랴빈스크가 뜬다.]의 KV 전차 생산공정의 일정부분을 T-34 생산시설로 교체하는데에 합의한다. 문제와 함께 개발 책임자였던 SKB-2의 조제프 코틴 장군이 KV의 개선 작업을 시작하면서 KV 시리즈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 했다. 코틴은 42년 여름동안 KV-13이라는 이름으로 30t으로 경량화시키면서 독일의 88mm포를 저지할 정도의 장갑을 유지하여 T-34와 KV를 대체하려고 생각했지만 [[현실은 시궁창]]이었다. 세묜 긴스부르그의 설계안에 따라 41년 가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이 KV-13은 소련의 주력전차 계획이 시작된 42년 3월에 첫번째 프로토타입이 완성되고 그 해 가을에 시험테스트를 성공했으나 변속기를 비롯한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고 두번째 프로토타입을 만들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모스크바에서는 그냥 KV의 라이벌인 T-34 생산하는데 전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프로젝트는 전면취소. 한편 부책임자였던 니콜라이 듀코브는 1941년에 KV-3 전차용으로 니콜라이 샤쉬무린이 설계한 트랜스 미션을 도입하고 가벼운 차체와 포탑으로 교체하여 KV-1S(s=fast)를 만들게 된다. 이로 인해서 방어력은 떨어졌으나 스피드와 신뢰성이 증가하였으며 1942년 늦여름에 생산이 시작되었다. 하지만 이것도 임시변통. 놀고 먹지 않았던 독일은 충공깽 88mm포를 이식한 [[6호 전차 티거|티거]]를 KV-1S와 비슷한 시기인 1942년 가을에서야 생산을 시작했고, 1943년 여름 장포신형 75mm 전차포의 [[판터 전차|판터]] 중형전차를 연이어 투입시켰다. 76mm의 T-34와 KV는 또다시 질적으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85mm형 [[T-34-85]]와 [[KV-85]] 전차가 개발되어 투입되었으나 KV-85는 곧이어 개발된 IS 중전차([[스탈린 전차]]) 시리즈의 양산과 함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. 그러나 KV 전차는 최초 양산/투입 당시에는 기껏해야 37mm에서 50mm, 간혹 단포신형 75mm인 4호전차나 굴리던 독일군을 [[충공깽]]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없었으며 독일군이 겪었던 이른바 'T-34 쇼크'보다도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알려진다. 문제는 그 실체가 준 고정 포탑에 가까웠달까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